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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1 점심 중 대화 엿듣기 8
끄적2009. 12. 1. 15:32

오늘 사무실 근처에서 레슬리랑 점심을 먹다가 은행원으로 보이는 네 명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은행원으로 보게 된 근거: 여자분들이 유니폼을 입고 계셨고, 돈과 은행 얘기가 계속 반복해서 나옴, 그리고 1시즈음에 식사를 하러 나옴)

이십 대 말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분과 과장님이라 호칭되는 한 명의 남자분은 결혼과 육아에 대해, 그리고 결혼후 직장을 다닐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반찬 16개에 집중하느라, 레슬리와 대화를 줄이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대화의 요점인 즉슨,
1. 일찍 결혼하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아직 이십 대에 결혼하고 일 안 하면 남편에게 집착하기 십상이다. 다 심심해서 그러는 것.
2. 결혼을 과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결혼하면 아무래도 돈이야 절약되고 모을 수 있지 않겠나.
3. 근데 애낳기 시작하면 돈이 배로 들지 않나.
4. 과장님인 즉슨, 애가 둘인데 학원 몇 군데만 보내면 둘이 합해 250만원 든다. 그거 웬만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나.
5. 그래도 내가 애 낳으면 다른 애들 다 하는 거 시켜야지, 괜히 못 견딜 것 같다.
6. 학원 열심히 보냈는데 맨날 중간 정도면 속상할 것 같다. 차라리 확 아래면 희망이라도 보이지. 항상 중간이면 이거 어떡해야해.
7. 학원 보내는 거 다 본인은 하기 싫어해도 주변에서 얘기가 나오니깐 불안해져서 그런거다. 아예 시골로 가 버려야 된다. 조용한 곳으로.
8. 진짜 돈 많은 사람보다 돈 만지는 일 하는 사람들이 돈 알기를 쉽게 본다. 1억, 2억 이 쉽고.
9. 1억 모으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과장님왈. 월급만 벌어서 1억 모을 수 없지. 한 달에 천 만원씩은 저금할 수 있어야 모으지.
10. 계속하야 돈+양육+결혼+돈+저금하기 등등 너무 열정적으로. 대화하심.

어디에서다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옆에서 또 들으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엄마 아빠는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번다.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에 사로잡혀 거짓 웃음을 지으며, 참아내고 참아내며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아들 딸 코흘리개 시절부터 여기저기 학원을 등록해 준다. 선량한 의도지, 잘 되라고. 큰 사람이 되라고. 중간 이상은 되라고.
아이들은 코 찔찔 흘릴 때부터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면서 엄마 아빠보다 바쁘게 산다. 5살부터 19살까지 15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쁘게 산다. 그리고 대학을 가고, 졸업해서, 회사에 가고, 바로 결혼을 한다.
본인의 엄마와 아빠가 살았던 방식처럼 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리고 본인의 엄마와 아빠가 했던 뼈빠지게 일함을 반복한다. 다시 본인의 아이들에게 의무감과 책임감을 발휘하기 위해. 그렇게 삶이 반복된다.

이거 뭐야. 되게 우울해.
왜 그러지? 뭘 위해서?
나는 점심 먹다가 우울해진다. 새삼 놀랄 것도 없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 날 더 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 대화들에 실망한다.

왜 사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날.
아. 재미없어. 사람들이 점점 재미없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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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금